배달 - 내 자신이 상사

사회 보험 및 기타 보호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정규직을 떠나 자영업자가 되거나 비정규직으로 이동을 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이 현상은 두드려졌다. 베트남 통계청의 최신 보고서에 의하면 2020년에는 119,100명이 증가 한 2천30만 명이었고, 올해 1 분기 말에 2천140만 명으로 증가하면서 추세가 둔화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나 자신이 상사이며 아무도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명령하지 않고, 새로운 직업은 나의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하노이의 ‘하이’(Le Phan Quang Hai) 씨는 올해 초 공장 노동자로서의 직업을 끝내고 배달원이 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며 위와 같이 말했다.

‘하이’씨는 이제 8시가 아닌 10시에 근무가 시작되고 저녁에 학교에서 딸을 데리고 올 수 있다는 현실에 매우 만족해하고 있다.

사진출처-VN Express
사진출처-VN Express

일정한 규칙에 따라 일하는 것이 불편한 베트남인의 습성에 불을 지른 것은 코로나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고대로부터 자급자족적 소농과 소상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자급자족이라고 하면 자기네 식구만 먹으면 됨으로 계획을 엄격하게 따르지 않아도 된다. 한국 기업들이 초창기에 애를 먹은 것도, 근로자들이 점심시간에 밥 먹으러 집에 가서는 아무 연락도 없이 안 오는 것이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상황에 따라 일을 해왔던 베트남 사람들이 현대화와 산업화의 시대에 편승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타 동남아인들보다 생활력이 강한 장점으로 인하여 산업화가 잘 이어져 왔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배달직으로 전환을 하고 있어 베트남 정부의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임금이 낮았던 옛 직장으로 결코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곳은 끊임없는 압력이 상주하는 곳입니다." 43세 ‘하이’씨의 말이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일 하면 돼

하이씨는 배달직으로 한 달에 8-9백만 동(45만 원)을 벌고 언제든지 자신이 원할 때만 일할 수 있기 때문에 배달직으로의 전환을 현명한 직업 선택으로 여기고 있다.

그가 일했던 전기 공장은 중국의 엄격한 Covid 제한으로 인해 재료와 부품을 얻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생산량이 감소함에 따라 수입도 줄었다.

"월 소득이 500만 동인데 생활비가 높은 수도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그 회사에 계속 머무르는 것은 무의미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저임금이나 승진 기회 부족으로 소수만 배달직으로의 전환을 시도했으나, 코로나 이후에는 다수의 사람들이 정규직을 그만두고 비정규직으로 전환을 한다.

뚜언(Tran Minh Tuan) 씨도 HCMC에서 전기 기술자로서의 직업을 그만두고 ‘배달기사’ 가 됐다

그는 한 달에 7백만 동을 받았으며 회사에서 8 년 동안 수많은 인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적은 보너스와 최소 급여 인상도 받지 못했다. 그는 회사에서 더 이상  발전이나 성장의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여 작년 말에 사임했다.

뚜언씨는 여가 시간에 음식을 배달함으로써 작은 옷 가게를 하는 아내를 도울 수 있으며 배달 수입도 짭짤해서 다시 공장으로 돌아갈 계획이 없다고 한다.

고향으로 돌아온 노동자들- 도시 '쥐들의 경쟁'에 지쳤다

또한 대도시를 떠난 일부 공장 노동자들은 시골이 살기에 더 쾌적한 곳이라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산업현장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빙밍(Nguyen Cao Binh Minh-53) 씨는 지난해 10월 아내와 딸과 함께 북부 엔바이성으로 돌아온 후 스트레스 없는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다.

"나는 도시의 쥐들의 경주에 지쳤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더 이상 집세와 다른 비용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야채를 재배하고 가족의 토지에서 가축을 키우는 데 시간을 보낸다.

올 1 월의 통계청의 보고서에 따르면 약 220만 명의 근로자가 코로나 기간 동안 주요 도시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러한 현상이 베트남의 경제발전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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