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세계가 충격에 빠져있다. 피난민 대열에 가끔 한국인도 등장한다. 폭탄이 퍼붓는 전장을 겨우 빠져나와 안전한 곳에 있다는 소식과 함께 아직 그곳에 남아 있는 한국인도 있다.

우크라이나에 사는 한국인은 소수이다. 이에 반해 베트남인은 수만 명이 살고 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에서 닦았던 삶의 터전을 뒤로하고 고국으로 돌아오거나 폴란드, 루마니아를 비롯한 동유럽의 피난 시설로 탈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는 베트남인들이 현지 우크라이나인들과 함께 한 지하대피소로 몸을 숨겼다/출처=VOV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는 베트남인들이 현지 우크라이나인들과 함께 한 지하대피소로 몸을 숨겼다/출처=VOV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동유럽 지역에 베트남인이 많은 것은, 특히 70년대부터 같은 사회주의 노선의 국가로 유학을 많이 갔던 베트남 학생들 때문이다.

1965년에서 1975년 치열한 월남전 시기에 북베트남 정부는 최대한으로 군사력을 동원해 전쟁에 집중하면서도 전쟁 이후를 대비해 많은 인재들을 동구권의 사회주의 국가로 유학을 보냈다.

이들은 군대에 입대하는 것 대신 ‘소련, 동독, 루마니아, 불가리아, 폴란드, 항거리, 체코’로 보내져 각각의 전문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도록 했다. 이들 중에 중국과 북한으로 간 이들도 있다. 전쟁 이후를 대비한 ‘인재개발전략’이었다.

이때 구소련은 똑똑한 베트남 유학생들을 받아 러시아 등의 15개 연방에 배치했다. 우크라이나도 소련의 15개 연방 중의 하나였고, 당시 공업이 발달했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1991년 구소련의 사회주의 체재의 중앙계획경제체제가 무너지면서 소비에트 연방은 15개 연방을 신생 독립국으로 승인하고 소련의 해체를 선언했다.

이런 세계사의 소용돌이 속에 베트남 유학생들이 있었다. 이들은 이곳에 남을 것인가 돌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중차대한 기로에 섰다.

그때 돌아온 유학생들 중에는 우리 기업인들에게도 알려진 인물들이 있다. 베트남 최대의 기업 빈그룹을 세운 팜 녓 브엉(Phạm Nhật Vượng), 비엣젯 항공사의 응웬 티 프응 타오(Nguyễn Thị Phương Thảo), 선그룹의 레 비엣 람(Lê Viết Lam) 그리고 베트남국제은행 VIB의 당 칵 비(Đặng Khắc Vỹ), 유로윈도우 홀딩(Eurowindow Holding)그룹의 응웬 까잉 썬(Nguyễn Cảnh Sơn)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있는 키이우대학 유학생 호 훙 아잉(Hồ Hùng Anh)도 있다. 그는 마산(Masan)그룹를 설립했고, 베트남 최초의 민간은행인 테크콤은행(Techcombank)의 이사회 의장이 되었다.

호훙아잉 테크콤은행 이사회 의장/출처=테크콤은행
호훙아잉 테크콤은행 이사회 의장/출처=테크콤은행

그러나 귀국을 포기한 유학생들도 있었다. 그때 남은 유학생 지식층을 통해 오늘날 동유럽의 여러 국가에 베트남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형성하는 근간이 되었다. 남은 이들은 동유럽의 새로운 시장경제의 메카니즘에 적응하며 사회경제적 활동에 참여해 왔다.

현재 우크라이나에는 약 3만 명의 베트남 사람들이 살고 있다. 수도 키이우에 1만명이 살고 있고, 나머지 2만명은 각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남은 베트남 사람들은 두 번의 전쟁을 겪었다. 2014년부터 수년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탈환하는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에서 1만4000명이 사망하여 수많은 이산가족이 발생했고 이 가운데 베트남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또 침범했다. 가난한 조국으로 돌아가기 보다는 우크라이나에 남아서 좀더 잘 살아보고자 했지만 결과는 두 번의 전쟁이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던 당시, 베트남의 일인당 GDP는 104달러였고 우크라이나는 1598달러였다. 우크라이나가 베트남보다 GDP가 10배나 더 높았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우크라이나의 GDP는 3613달러로 2배밖에 오르지 않은 반면, 베트남은 2639달러로 20배나 올랐다. ‘남은 자들’과 ‘돌아온 자들’ 간의 희비(喜悲)가 엇갈리는 부분이다.

이번 전쟁은 크림반도 탈환 때 보다 그 피해가 더 심하여,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파괴되었다. 30~40년을 그 땅에 살면서 제2의 고향이 되어버린 그곳을 떠나 피난길에 올라야 하는 베트남사람들, 그 허탈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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